앞 글에서 김 씨 성을 우리말 소리 그대로 영어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을 설명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말에 담긴 소리의 특성을 그대로 알파벳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원리를 '박' 씨 성을 바탕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훈민정음 표기는 기본적으로 초성, 중성, 종성의 세 가지 소리 구성요소를 갖습니다. 세종대왕이 추구했던 문자 표기의 원리가, 초성, 중성, 종성을 하나로 모으는 방식이었습니다. 셋은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합니다. 첫소리가 하늘의 소리라면, 두 번째 소리는 땅의 소리이고, 세 번째 소리는 사람의 소리가 됩니다. 이 셋이 어우러져 존귀한 인간의 소리가 되고, 이 소리를 문자로 표기하는 원리가 훈민정음 표기의 참된 원리입니다. '박'이라는 글자에는 하늘의 소리인 비읍과 땅의 소리인 '아' 그리고 사람의 소리인 '기역'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 사람은 모음을 만드는 원리이기도 하지만 글자를 표현하는 원리로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비읍'을 하늘, '아'를 사람, '기역'을 땅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원리는 3개의 구성성분이 어우러져 호흡을 통해 소리로 표현되고, 그 속에서 사람의 마음에 담긴 뜻이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동양사상에서 볼 수 있는 '삼극'의 원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3개의 구성 성분은 "하늘 아래에서 땅 위에 발을 디디고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람"으로 문자 기호화 되고, 소리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알파벳은 음소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늘어놓는 방식입니다. '박'이라는 소리도 알파벳 방식으로는 'ㅂ ㅏ ㄱ'이 됩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자 하나씩을 표기하는 방법입니다. 알파벳이 음소를 하나씩 표기하듯이 세종대왕도 음소를 하나씩 표기했다면 우리는 '박' 대신에 'ㅂ ㅏ ㄱ'이라고 썼을 것입니다. 이렇게 표기하지 않은 원리를 생각해 보면 세종대왕이 사람을 대하는 관점,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는 방식,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까지 담고자 했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박'을 'Bag'으로 표기하지 않는 것은 우리말 표기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의 a가 여러 가지로 발음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Bag'의 발음이 '백'이 되듯이, a는 여러 가지 모음으로 소리가 납니다. Bake, Cake, make처럼 '에이'로도 소리가 나고, bag, lag, tag처럼 '애'로도 소리가 나고 Banana에서 처럼 '어'와 '아'로도 소리가 나기 때문에 a를 '아'로 생각하고 표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됩니다.
'박'을 'ㅂ ㅏ ㄱ'으로 표기하고, 비읍을 b로 '아'를 a로 그리고 기역을 g로 이해했다면, '박'은 'Bag'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글자를 조합해놓고 보면 영어 단어에 'bag(가방)'이라는 단어와 같게 됩니다. '박'이 영어 단어의 '백'이 되는 결과가 생깁니다. 또한 영어의 b는 유성음이기에 우리말 비읍과는 소리가 다릅니다. 울림소리를 가진 b에 비해서 우리말 비읍은 울림소리가 아닙니다. 울림소리가 아니면서 우리말 비읍과 비슷한 소리가 p입니다. P는 우리말 피읖과 같은 소리이지만, 우리말 비읍과 유사한 소리 중 그나마 가까운 소리가 p가 된 것입니다.
영어에서 P와 B는 소리의 구별을 나타내는 변별음입니다. P는 무성음이고, B는 유성음이라는 차이를 제외하면, 이 둘은 소리를 내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양 입술을 폭발시키듯 한 번에 소리를 쏟아냅니다. 영어에서 P와 B는 명확히 구별되는 소리이지만 우리말 비읍과 피읖은 둘 다 무성음이라는 점에서 알파벳에 같은 소리가 없게 됩니다.
비읍이 B도 아니고 P도 아니지만 우리말에서는 비읍, 피읖, 쌍비읍을 구별합니다. '발, 팔, 빨'을 구별하지 못하는 한국인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말의 비읍 피읖, 쌍비읍은 서로 구별되는 변별음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말에서 이들 소리를 구별하는 방법은 공기의 양과 마찰의 정도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반면에 우리말 비읍 피읖, 쌍비읍을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구별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부산, 푸산, 뿌 산' 어느 것으로 발음해도 거의 같은 소리로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원리로 '부천, 푸 천, 뿌 천'의 어느 발음을 해도 구별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에 '부산'을 Busan으로 표기하기도 했다가 Pusan으로 표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박'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그나마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영어 발음을 찾아내었고, 그 표기가 Park인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야구선수 '박찬호' 선수가 등에 성씨를 표시할 때 'Park'로 했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박' 씨 성을 'Park'로 표현했다면 '공원'이라는 발음에서 볼 수 있듯이 r은 약하게 소리 나면서 우리말 '박'과 비슷하게 들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 '박'은 결코 아니지만 'ㅂ ㅏ ㄹ ㅋ'로 표기된 알파벳에서 '박'과 비슷한 발음으로 인식하게 된 것입니다.
알파벳으로 표기된 가로로 쓰인 글자를 훈민정음의 표기 원리로 옮겨서 나타내면 위의 글자와 같은 발음이 될 것입니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에 비추어 받침으로 리을과 키읔을 함께 표기하였습니다. '박' 씨 성을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 나타나는 소리 표기의 원리와 그 소리에 담긴 의미를 바탕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Park는 영어 단어에 '공원'이라는 의미가 되고, bark는 '짖다'에 해당하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박'을 우리말 소리 그대로 표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우리가 알파벳으로 표기할 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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